[오프라인 마케팅 트렌드]보는 전시에서 노는 전시로 : 체험형 전시의 변화

2026-09-28
흑백 사진. 미술관 창가에서 관람객 두 명이 실루엣으로 서 있고, 오른쪽 벽에는 작품 여러 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unsplash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할 때 늘 따라붙는 질문이 있어요.

“사람들이 이곳에 얼마나 머물다 갈까?”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금방 나가는 공간과, 한참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나가는 공간이 남기는 기억은 분명 다르니까요.

이 질문을 놓고 보면 전시장은 꽤 흥미로운 공간이에요. 우리는 보통 전시를 본다고 하면, 작품 앞에 잠깐 서서 그림을 보고, 옆에 붙은 설명을 읽고, 다음 작품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죠.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작품 한 점 앞에 얼마나 오래 머물까요?

2001년, 미국의 한 연구자 부부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 시간을 직접 측정했어요. 관람객 150명이 유명한 그림 여섯 점 앞에 머무는 시간을 살펴봤더니, 중간값은 고작 17초 남짓이었어요.

전시 하나를 통째로 놓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박물관 관람객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비벌리 세렐이 전시 110개를 분석했더니, 10개 중 8개는 평균 관람 시간이 20분도 채 되지 않았고요.

그림 한 점에 17초, 전시 하나에 20분

우리가 “전시 잘 보고 왔다”고 말할 때보다 실제 관람은 훨씬 짧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아가는 전시는 조금 달라요. 신발과 양말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고, 냉동고 문을 열어야 다음 공간으로 갈 수 있는 곳도 있어요. 방문을 열었더니 사춘기 딸이 한숨을 푹 쉬는 곳도 있고요.

이곳에서는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없어요. 직접 걷고, 열고, 만지고, 때로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죠. 그러다 보니 20분이면 끝났을 전시에서 두 시간씩 머물다 나오기도 해요.

그렇다면 전시는 언제부터 ‘보는 일’보다 직접 움직이고 경험하는 일이 많아진 걸까요?


30년 전부터 보인 변화의 시작

사실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에요. 1992년, 박물관 관람을 연구하던 존 폴크와 린 디어킹은 관람을 조금 다르게 바라봤어요. 사람들은 전시장에서 가만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왔는지, 어떤 기분인지, 공간은 어떤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한다고 본 거예요. 그 경험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요. 전시장에 오기 전부터 집에 돌아간 뒤까지 이어진다고 봤어요. 몇 년 뒤인 1998년에는 경영 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조지프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경험’도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실은 거예요. 물건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경험 경제』를 쓴 조지프 파인(왼쪽)과 제임스 길모어(오른쪽)의 인물 사진. 파인은 팔짱을 끼고 정장 차림이며, 길모어는 파란 안경을 쓰고 미소 짓고 있다.

<경험 경제> 저자. '조지프 파인(좌)'과 '제임스 길모어(우)'

관객의 움직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를 보면 공연이나 전시를 직접 보러 간 사람의 비율은 60.2%로, 1년 전보다 2.8%p 줄었어요. 반면 문화예술 행사에 직접 참여한 사람은 5.8%, 문화예술 교육을 받아 본 사람은 8.6%로 각각 1.1%p, 2.2%p 늘었고요. 이 수치만으로 관람이 참여로 옮겨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문화예술을 직접 해보고 참여하는 경험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그러니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도 질문을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이 작품을 어떻게 잘 보여줄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기 온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라는 질문으로요. 그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는 세 곳을 살펴볼게요.


장 보러 들어갔다가, 두 시간 동안 못 나온 마트?

Meow Wolf 〈Omega Mart〉, 미국 라스베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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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ega Mart(오메가 마트)란?

미우 울프(Meow Wolf)는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예술가 집단에서 시작해, 관람객이 직접 공간을 탐험하는 몰입형 전시로 유명해진 회사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 문을 연 이 전시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슈퍼마켓처럼 보이지만, 냉장고 문을 열거나 진열대 뒤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초현실적인 공간이 나타납니다. 관람객은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숨겨진 통로를 발견하고, 곳곳에 놓인 단서를 따라가며 전시에 숨겨진 이야기를 직접 찾아볼 수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조금 벗어나면 AREA15라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단지가 있어요. 그 안에 있는 Omega Mart(이하 '오메가 마트')는 처음 들어가면 그냥 동네 마트처럼 보여요. 선반이 줄지어 있고, 냉동 코너와 신선 코너가 있고, 직원들은 손님을 반갑게 맞아요. 그런데 물건을 살펴 보면 뭔가 기묘해요. ‘미국화된 소고기’, ‘병에 담긴 영향력’, '타투한 치킨’ 등, 심지어 종말 대비 코너에는 ‘매머드 덩어리’ 같은 상품이 진열돼 있거든요. 이런 가짜 상품만 100가지가 넘어요.

오메가 마트에서 빨간 티셔츠와 파란 앞치마를 입은 직원이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다. 선반에는 매머드 그림이 그려진 가짜 통조림 '매머드 청크'와 '탈수된 물' 캔이 놓여 있다.

©Omega Mart

그런데 관람객은 이 이야기를 누군가가 앞에서 설명해 주는 대로 듣지 않아요. 사무실 전화기에 남겨진 음성 메시지를 듣고, 컴퓨터 파일을 열어 보고, 서랍 속 메모를 뒤지며 직접 알아내요. 입구에서 받은 ‘부프(Boop) 카드’를 곳곳의 단말기에 찍으면 숨겨진 영상과 문서가 하나씩 열리고요. 물론 카드 없이 그냥 구경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요.

같은 공간 안에서도 사람마다 경험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거죠.

아이들은 버튼을 누르고 문을 들락날락하며 놀고, 어른들은 사무실에 눌러앉아 회사의 비밀을 파헤쳐요. 한 여행 블로거는 몇 시간 동안 만질 수 있는 건 다 만져 보고, 냉장고와 자판기로 위장한 문을 끝도 없이 드나들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가장 좋았던 순간은 따로 있었대요.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놓친 무언가를 찾아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순간이었다고요. 사람들은 이렇게 직접 움직이다 보면 평균 두 시간쯤 머물다 나와요. 앞에서 본 ‘전시 하나에 20분’의 여섯 배예요. 2021년 2월 문을 연 뒤 첫해에만 백만 명 이상이 다녀갔고요. 단순히 볼 것이 많은 공간이라기보다, 움직일수록 새로운 경험이 계속 열리는 공간에 가까워요.


250만 명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미술관

teamLab Planets, 일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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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Lab Planets(팀랩 플래닛)이란?

팀랩(teamLab)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일본의 아트 컬렉티브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전시로 유명합니다.

도쿄 도요스의 ‘팀랩 플래닛’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전시장을 걸으며 작품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물속을 걷거나 빛과 꽃으로 가득한 공간을 지나며,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영상과 빛이 실시간으로 변합니다. 작품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도쿄 도요스에 있는 teamLab Planets(이하 '팀랩')에는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는 거예요. 소지품은 무료 사물함에 넣고, 바지를 걷기 어려운 사람은 반바지를 빌려 입죠.

맨발로 첫 번째 통로에 들어서면 발밑으로 따뜻한 물이 흘러내려요. 어둡고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물을 밟으며 올라가는 거죠. 한 부부는 우주선에 올라탄 기분이 들어 손을 꼭 잡고 걸었다고 해요. 조금 더 들어가면 무릎까지 물이 차는 방이 나오고, 물 위로는 빛으로 된 잉어들이 헤엄쳐 다녀요. 이 잉어가 사람 다리에 부딪히면 꽃잎으로 흩어져 버리고요. 물속에 선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잉어가 방향을 틀고, 꽃이 피었다 져요. 컴퓨터가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똑같은 모습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아요.

팀랩 플래닛의 물이 찬 전시실. 관람객이 몸을 숙여 수면에 손을 대고 있고, 물 위로 알록달록한 빛의 잉어와 꽃잎 영상이 비친다.

©teamLab Planets

팀랩은 이곳을 ‘몸 전체로 들어가는 미술관’이라고 소개해요. 관람객은 작품 앞에 서서 바라보는 대신, 직접 걷고 물에 들어가고 눕고 움직이면서 작품 안으로 들어가요.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것도 단순히 “작품이 예뻤다”는 감상과는 조금 달라요. 맨발로 걸었던 어색함이나 발에 닿았던 물처럼,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겪은 감각을 이야기해요.

'맨발로 미술관을 걷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정말 재밌었다'
'물이 발에 닿던 느낌은 다른 미술관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 느낌을 찾아 2023년 4월부터 1년 동안에만 250만 4,264명이 이곳을 다녀갔어요. 한 작가 그룹의 작품만 전시하는 미술관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해 기네스 기록에도 올랐고요.


문 하나 열었을 뿐인데, 내가 사춘기 딸의 부모가 됐어요

엔타쿠 〈너무 착한데? 전 & 틀린 건 아닌데 전〉, 서울·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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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타쿠 〈너무 착한데? 전 & 틀린 건 아닌데 전>이란?

엔타쿠(entaku)는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공간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인 일본의 크리에이터 그룹으로, 일상 속 미묘한 감정을 재치 있게 풀어낸 전시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너무 착한데? 전〉은 자리를 양보하거나 낯선 사람을 도와주는 등 일상에서 만나는 ‘착한 순간’을, 〈틀린 건 아닌데 전〉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애매한 순간들을 보여 줍니다. 관람객은 사진과 글, 공간으로 표현된 다양한 상황을 둘러보며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공감하게 됩니다.

마지막 사례는 올여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와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에서 동시에 열린 전시예요.

전시장을 걷다 보면 '사춘기 딸의 방'이라는 방문 하나가 나와요. 문을 열면 책상에서 공부하던 딸이 고개를 돌려요. 딱 “왜 들어왔어?” 하는 얼굴로요.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죠. 문 안쪽에 있는 건 사진도 영상도 아닌 진짜 배우예요.
옆방도 만만치 않아요. 기념일에 레스토랑에서 연인을 50분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방인데, 문을 열자마자 배우가 화를 내요. 문을 연 사람은 졸지에 50분 늦은 연인이 되는 거죠. 구경하러 들어갔던 사람이 어느새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직접 상황을 겪게 돼요.

'화난 사람 동물원' 전시의 '사춘기 딸의 방'. 책상에 앉은 소녀가 불쾌한 표정으로 문 쪽을 돌아보고, 옆 안내판에는 일본어로 '갑자기 문을 열린 사춘기 아이'라고 적혀 있다.

'사춘기 딸의 방' ©엔타쿠 공식 인스타그램(@entaku_official)

이 전시를 만든 건 일본 도쿄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엔타쿠예요. 대표인 묘엔 스구루는 광고회사 덴츠 출신이고요. 2023년 도쿄에서 처음 열려 큰 인기를 끌었고, 2024년 여름 서울 홍대입구에서 첫 해외 전시를 열었어요. 2025년에는 성수동으로 옮겨 갔는데, 그때는 문을 열면 쉬고 있던 직원과 딱 마주치는 방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올해 전시에는 한국 관객을 위해 새로 만든 ‘K-패치’ 콘텐츠도 들어갔어요.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SNS에서 영상을 보고 찾아온 사람이 많고, SNS에서 본 그대로라는 말을 자주 듣는대요. 문 하나를 열고 배우와 마주친 몇 초의 경험이 짧은 영상이 되고, 그 영상이 다시 다른 사람을 전시장으로 불러오는 거예요.


세 곳을 나란히 놓고 보면

 Omega Mart(오메가 마트)teamLab Planets(팀랩 플래닛)엔타쿠 전시
들어가며모든 문을 열어 보자신발과 양말을 벗는다방문 손잡이를 돌린다
안에서찾고, 뒤지고, 알아낸다걷고, 물에 들어가고, 눕는다이야기 속 한 사람이 된다
밖에서내가 찾아낸 이야기를 나눈다몸이 기억하는 감각을 나눈다기억에 남는 장면을 나눈다

세 곳은 모습도 규모도 전혀 달라요. 하나는 다른 차원까지 품은 거대한 마트고, 하나는 빛과 물로 채운 미술관이에요. 하나는 문과 배우 몇 명이 전부인 전시고요. 그런데 공통점은 분명해요.

셋 다 “무엇을 보여줄까?”보다 “여기 온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를 먼저 고민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경험은 대부분 관객이 직접 움직이고, 감각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순간부터 시작돼요.


브랜드의 공간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여기까지가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변화라면, 브랜드의 공간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더 필요해요.

사람을 참여하게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경험이 브랜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이 지점에서 전시의 변화는 오프라인 마케팅의 이야기와도 연결돼요. 앞에서 이야기한 파인과 길모어의 글에는 이런 비유가 나와요.

서비스는 무대가 되고, 물건은 소품이 된다는 거예요.

그 무대 위에서 손님이 기억할 만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 앞으로 기업이 해야 할 일이 그쪽으로 옮겨갈 거라는 이야기였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매장을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는 무대로 바꾸고 있는 브랜드들이 있어요.

침대를 숨긴 침대회사의 오프라인 마케팅: 시몬스

지난 9월 초, 성수동 시몬스 갤러리에서 사흘 동안 공연이 열렸어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열리던 주간이었죠. 최고급 매트리스 라인 ‘뷰티레스트 블랙’을 알리는 자리였는데, 이상하게도 매트리스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어두운 입구에 들어서면 얼굴을 가린 직원이 구부러진 숟가락 하나를 손에 쥐여 줘요. 그러면서 “꿈의 세계로 가는 열쇠”라고 말해요. 깜깜한 통로를 조금 걸으면 무용수 한 명이 다가와 손을 잡고 안으로 데려가고요. 안에는 객석이 따로 없어요. 관객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고,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은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져요. 무용수들의 몸짓은 고요함, 유연함, 회복하는 힘, 몸을 받쳐 주는 구조를 나타내요. 전부 깊은 잠을 자는 데 필요한 것들이죠. 공연을 본 한 기자는 처음엔 낯설었던 몸짓에서 어느새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어요. 다른 기자는 무용수들의 숨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금방 사라졌다고 적었고요.

입구에서 받은 숟가락이 뭘 위한 건지는 3층에 가서야 알게 돼요. 꿈을 담은 영상 앞에서 그 숟가락으로 한입 요리 네 가지를 떠먹는 거예요.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이번에는 흰옷으로 갈아입은 무용수들이 2부 공연을 이어가요. 현실에서 잠으로 들어가 꿈을 꾸고, 다시 깨어나는 흐름을 관객이 직접 따라 걷는 공연인 셈이에요.

시몬스에 따르면 국내 침대 회사가 프리즈 기간에 이런 아트 퍼포먼스를 연 건 처음이라고 해요. 일반 관람객 예약은 1분 만에 끝날만큼 인기가 좋았고요.

그런데 침대 회사가 왜 이런 공연을 할까요?

침대는 매일 사용하지만 자주 사는 물건은 아니에요. 그래서 구매가 일어나지 않는 긴 시간에도 브랜드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가 중요해요. 시몬스는 그 긴 시간 동안에도 사람들이 브랜드를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접점을 꾸준히 만들어왔어요. 시몬스의 브랜드 전략을 이끌어 온 김성준 부사장(당시 상무)은 2022년 인터뷰에서 평소에는 굿즈나 문화예술 경험으로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쌓아두다가, 정작 물건을 살 때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팬덤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어요. 그래서 시몬스는 침대를 빼고 사람들이 “시몬스가 이런 것도 해?” 하고 놀랄 만한 일들을 해왔어요.

2020년 성수동에는 4평짜리 철물점 콘셉트 매장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를 열었는데, 여기엔 침대가 한 대도 없었어요. 2022년부터는 청담동에서 햄버거와 굿즈를 파는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운영했고요. 김성준 부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최근의 매출은 광고가 아니라 이천 ‘시몬스 테라스’나 성수동 하드웨어 스토어 같은 활동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이번 공연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다만 이번에는 굿즈나 햄버거가 아니라, 시몬스가 이야기해 온 ‘잠’이라는 경험 자체를 공간 안에서 몸으로 느끼게 했어요. 김민수 시몬스 대표는 뷰티레스트 블랙이 주는 깊은 잠이 다음 날의 영감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시작한 하루가 하나의 예술이 된다는 생각을 공연으로 풀었다고 설명했어요. 시몬스는 이 매트리스를 ‘숙면한 다음 날 새로운 영감이 태어나는 캔버스’라고 소개하고요. 침대는 한 대도 없었지만, 무용수의 손에 이끌려 공간을 걷고 숟가락으로 꿈을 떠먹었던 순간은 오래 남을 수 있어요.

제품을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잠’이라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감각과 기억으로 남긴 거죠.

매장 2층이 무대가 됐어요: 러쉬

러쉬 성수점의 야간 외관. 2층 통유리창 안에서 배우들이 공연하고, 1층 입구 앞에서는 배우들이 비눗방울 속에서 연기하며 욕조 모양 조형물이 놓여 있다.

©러쉬코리아

러쉬 성수점은 러쉬가 아시아에서 처음 연 콘셉트 매장이에요. 이곳에서는 1년 넘게 조금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매장 2층 난간에서 배우들이 골목을 향해 연기를 하는 거예요. 초대장도, 예약도 없어요. 길을 걷다가 노랫소리에 고개를 들면 그 순간부터 관객이에요.

첫 시즌 공연 ‘무명배우의 욕실편’은 아흔아홉 번째 오디션에서 떨어진 무명배우의 이야기였어요. 이 배우가 욕조와 샤워기, 거품 친구들을 만나 속상한 마음을 씻어내고 다시 무대에 서게 되는 이야기죠. 공연 중에는 러쉬 특유의 향이 주변으로 퍼져요. 관객은 이야기를 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러쉬의 향을 경험하고요.

이에 힘입어 러쉬는 시즌마다 장르를 바꿨어요. 드랙 아티스트들이 나온 두 번째 시즌, 뮤지컬 펍과 함께한 세 번째 시즌, 국악 밴드 잠비나이와 함께한 네 번째 시즌까지요. 세 번째 시즌은 고백 노래에 관객이 박수로 답해야 공연이 마무리되는 방식이었어요. 관객이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반응하고 참여하면서 공연을 함께 완성하는 거예요.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공연을 시작한 2025년 9월에는 ‘러쉬 성수’ 네이버 검색량이 공연이 없던 8월보다 2.4배 넘게 늘었어요. 러쉬 담당자에 따르면 네이버 지도에서 ‘성수 팝업’ 인기 순위 1위에도 올랐고, 그동안 약 4만 명이 공연을 본 것으로 추산된대요. 성수에서는 보기 드문 가족 단위 관객도 많았고,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와 다음 공연 일정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서 더 눈여겨볼 건 공연이 재미있었다는 사실만은 아니에요. 무명배우는 욕실에서 속상한 마음을 씻어내고 다시 무대로 나가요. 향과 거품, 씻는 행위가 이야기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고요.

사람의 참여가 단순한 재미로 끝나지 않고,
브랜드가 전하고 싶은 감각과 이야기 안에서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보는 것보다, 직접 경험한 것이 남아요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사람들은 명작 앞에 17초 머물렀어요. 그리고 오메가 마트에서는 두 시간을 보냈고요. 그 차이를 만든 건 화면의 크기나 기술의 수준만은 아니었어요. 엔타쿠 전시에는 문과 배우 몇 명밖에 없는데도 사람들은 한참을 웃고 이야기하다 나왔으니까요.

지금까지의 사례를 떠올려 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에는 대부분 사람이 직접 경험 안으로 들어간 순간이 있어요. 냉동고 문을 열어 숨겨진 공간을 발견하고, 따뜻한 물을 맨발로 걷고, 방문을 열었다가 배우의 한숨을 듣고, 숟가락으로 꿈을 떠먹고, 길을 가다 멈춰 공연에 박수를 보내는 것.

눈으로 본 장면은 금세 지나갈 수 있지만, 직접 움직이고 참여하며 겪은 경험은 감각과 이야기로 남아요.

“이거 너잖아”라고 말하던 커플처럼 함께 온 사람과의 대화로 이어질 수도 있고, 다음 공연 날짜를 묻던 관객처럼 다시 그 공간을 찾을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브랜드에게는 이 차이가 더 중요해요. 오프라인 공간을 만드는 이유가 제품이나 메시지를 한 번 더 보여주는 데 그친다면, 온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공간에서는 사람이 직접 움직이고, 만나고, 느끼고, 참여할 수 있죠. 그리고 그런 경험은 아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되기도 해요. 신발을 벗고, 문고리를 돌리고, 숟가락을 받아 들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된 작은 행동 하나가 평소와 다른 감각과 관계를 만들고, 그 경험을 기억하게 할 수도 있어요. 다만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해요.

사람을 참여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에요.
중요한 건 그 경험이 왜 이 브랜드의 공간에서 일어나야 하는가예요.

오메가 마트는 소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존재했고, 시몬스의 무용수들이 몸으로 보여준 건 깊은 잠이었어요. 러쉬의 무명배우는 욕실에서 마음을 씻어냈고요.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사람이 경험한 것과 그 공간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놀지 않아요. 그래서 그 순간을 떠올릴 때 공간과 브랜드도 함께 기억될 수 있는 거겠죠.

그러니 다음에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한다면, “여기에 무엇을 보여줄까?”보다 먼저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어요.

여기 들어온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은 왜 꼭 우리 브랜드에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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