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 트렌드]팝업 전성시대, 사람을 움직이는 '콘셉트(Concept)'의 조건

2026-08-24



프라모델 부품처럼 배열된 야외근무중 뉴스레터 일러스트, 캔들·삼겹살·침대·트로피 등 본문에 등장하는 팝업 사례 소재들시간이 지나도 기억나는 오프라인 마케팅 비법


오늘은 퀴즈 하나로 시작해볼게요.

Q. LED 전구가 보급된 2000년대 이후, 양초 판매량은 늘었을까요 줄었을까요?


문제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정답은 '늘었다'예요.


『컨셉 수업』 저자이자 TBWA 하쿠호도 CCO 호소다 다카히로가 강연하는 모습


광고회사 TBWA 하쿠호도의 CCO 호소다 다카히로가 저서 『컨셉 수업』에 서 든 사례인데요. 양초의 기능은 원래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이었고, 그 기능은 전구에게 완전히 패배했어요. 하지만 양초는 '캔들'이라는 이름으로 어둠을 즐기고 향을 즐기는 물건이 되면서 살아남았어요. 심지어 개당 30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상품까지 나왔고요.

제품은 그대로예요. 왁스와 심지, 불꽃. 바뀐 건 '이게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 하나였어요. 어둠을 밝히는 기능적 접근에서 어둠을 즐기는 감성적 접근으로 답이 바뀌는 순간, 같은 물건이 전혀 다른 물건이 된 거죠. 그리고 그 답을 우리는 '콘셉트'라고 불러요.

오프라인 마케팅도 똑같아요. 같은 브랜드, 같은 예산인데 콘셉트 하나에 따라 굳이 찾아가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다녀와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공간이 되기도 하거든요.
오늘은 사람을 움직이는 좋은 콘셉트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실제 팝업 사례와 함께 살펴볼게요. 🏃🏻💨




🤔 팝업 기획할 때 '콘셉트'가 왜 중요할까?

올해 팝업스토어 방문 경험이 있는 251명에게 '잘 만든 팝업'의 핵심 요소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할 만한 체험 요소가 다양할 때'(31.5%)를 꼽았어요. 굿즈나 혜택(21.5%),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공간(17.1%)보다 높은 응답이었고요. 즉, 단순히 시각적으로 예쁜 공간보다, 그 안에서 감각적으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더 좋은 팝업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이는 브랜드 인식으로 직접 이어져요. 팝업 방문 후 브랜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뀐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89.6%였는데, 그중 42.2%는 제품을 구매했거나 구매 의향이 생겼고, 29.8%는 다른 사람에게 브랜드를 추천했다고 답했어요. 팝업에서의 좋은 경험이 호감에서 끝나지 않고 구매와 입소문까지 이어진 거예요.

그래서 콘셉트는 공간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이곳에 와야 하고 여기서 브랜드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지를 정하는 기준에 가까워요. 이런 문장 두 개를 나란히 놓아보면 차이가 확 느껴지실 거예요.

| "OO 브랜드의 신제품을 소개합니다."

| "한낮의 도심에서 즐기는 OO 브랜드의 VIP 칵테일바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궁금한지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와요.



잘 잡힌 콘셉트는 방문 전부터 공간을 상상하게 하고, 현장에서는 브랜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들 수 있어요.




🧭 기획서에서 콘셉트가 자꾸 사라지는 이유

제품 콘셉트 예시인 애플 아이팟 '1,000 songs in your pocket' 광고와 브랜드 콘셉트 예시인 에어비앤비 오피스의 'Belong Anywhere' 슬로건


첫째, 브랜드 콘셉트와 제품 콘셉트를 섞어 쓰기 때문이에요.


제품 콘셉트는 제품이 가진 특징이나 기술을 중심으로 만든 아이디어예요. 아이팟의 ‘주머니 속의 1000곡’이 대표적이죠. 반면 브랜드 콘셉트는 고객의 입장에서 그 브랜드를 어떤 경험과 의미로 받아들이게 할지를 다뤄요. 에어비앤비의 ‘Belong Anywhere’처럼요.
기획서가 어딘가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이 둘을 혼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신제품 3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제품의 특징을 그대로 공간에 옮겨놓은 것에 가까워요. 고객 입장에서는 아직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고요. 결국 만드는 사람의 말을 고객이 경험하고 싶은 언어로 한 번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나쁜 질문』 저자 SBS 이동원 PD의 프로필 사진과 책 표지


둘째, WHAT과 HOW만 정하고 WHY를 건너뛰기 때문이에요.


무엇을 놓을지(WHAT), 어떻게 연출할지(HOW)는 회의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항목이에요. 반면 왜 이 브랜드가 이걸 해야 하는지(WHY)는 답하기 어렵고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WHY가 빠진 문서는 콘셉트가 아니라 연출안이에요. 연출안은 예산이 줄면 같이 줄어들지만, 콘셉트는 예산이 줄어도 남을 수 있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연출한 15년차 SBS 이동원 PD는 저서 『나쁜 질문』에서 이렇게 말해요.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누군가 당신에게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단 3초 안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 한 줄로 설명을 할 수 있는지다 . 그 한 줄은 기나긴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 ‘우리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알려주는 유일한 북극성이 된다.”


결국 콘셉트는 ‘왜 이걸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에서 출발해요. 이 답이 있어야 함께 만드는 사람들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고요.




🔑 좋은 콘셉트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나와요

그럼 좋은 콘셉트는 어떻게 만들까요?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 전에, 우리가 어떤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좋은 콘셉트가 안 나오는 건 아이디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처음부터 문제를 너무 좁게 보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오래된 건물의 계단 옆에 놓인 낡은 엘리베이터, 느린 엘리베이터 문제를 상징하는 이미지


가장 유명한 예가 ‘느린 엘리베이터’ 문제예요. 한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는 입주자 불만이 쏟아졌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더 빠르게 만들까?”를 고민했죠.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답은 하나같이 비쌌어요. 모터를 교체하거나, 운행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한 대 더 놓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문제를 다르게 보고 질문을 바꿨어요.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덜 지루하게 만들까?” 그러자 답도 완전히 달라졌어요. 엘리베이터 앞에 거울을 붙인 거예요. 사람들은 거울을 보며 시간을 보내게 됐고, 엘리베이터 속도는 그대로였지만 기다림에 대한 불만은 크게 줄었어요.

중요한 건 거울이라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문제를 '속도'가 아니라 '지루함'으로 다시 정의했다는 점이에요.

콘셉트도 똑같아요. 질문이 "어떻게 더 잘 보여줄까"에 머물러 있으면 나오는 답은 늘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같은 제품, 같은 예산이어도 질문을 바꾸면 나오는 기획이 달라질 수 있어요.
콘셉트 회의가 겉돈다면 아이디어를 더 내기보단, 회의 첫 줄에 적힌 질문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콘셉트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까지 이야기했는데요. 사실 이런 건 말로만 들으면 잘 와닿지 않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지금도 회자되는 팝업부터 지금 열려 있는 팝업까지 콘셉트가 독특했던 세 곳을 가져왔어요. 그럼 하나씩 자세히 살펴볼게요.


🛏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 침대 브랜드의 팝업에 침대가 없다면?

BEFORE — "우리 침대가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보여줄까?"
AFTER — "침대를 살 생각이 없는 사람도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시몬스가 만든 팝업에는 침대가 없었어요. 진열도, 체험용 매트리스도, 누워볼 자리도요. 침대 회사가 침대를 뺀 공간을 운영했어요.

이유는 침대라는 물건의 성격에 있어요. 한 번 사면 십 년 가까이 쓰니까 고객이 매장을 찾는 순간이 아주 드물게 찾아와요. 부피가 크고 값도 비싸서 가볍게 하나 사보는 일도 없고요. 그래서 이 업계의 이야기는 늘 '지금 침대를 사려는 사람'을 향해 있었어요. 좋은 스프링, 편안한 수면, 유명 모델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처럼요. 시몬스는 다른 질문을 골랐어요. ‘나머지 9년 동안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


철물점을 콘셉트로 한 성수동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외관과 식료품점을 콘셉트로 한 청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내부


첫 시도는 2020년이었어요. 창립 150주년을 맞아 성수동에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를 열었는데, 말 그대로 철물점이었어요. 침대라는 이미지를 '하드웨어'로 넓혀 수작업으로 침대를 만들던 브랜드의 역사를 은유한 콘셉트였죠. 안에서는 작업복과 안전모, 목장갑, 공구를 팔았고요. 150주년을 자축하는 대신 20세기 초중반의 광고 포스터와 배송 기사들이 쓰던 헬멧을 걸어 역사를 슬쩍 내비쳤어요. 부피가 크고 비싼 침대 대신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을 놓아 브랜드의 문턱을 낮춘 시도였어요.

2022년 청담에 문을 연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는 형식이 한 번 더 바뀌었어요. 이번엔 유럽의 스타일을 본뜬 식료품점이었죠. 하드웨어 스토어가 브랜드의 역사를 철물점이라는 형식으로 옮긴 콘셉트였다면, 그로서리 스토어는 일상의 빈도를 빌려온 콘셉트예요. 9년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 브랜드에게 필요한 건 인생에서 몇 번 갈까 말까 한, 큰 결심을 하고 찾아가는 침대 매장이 아니었거든요.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매주 들르는 식료품점, 그 익숙한 빈도 쪽이었어요.

이 공간의 목표는 판매가 아니라 각인이었어요. 지금 20대에게 스프링의 성능을 설명해봐야 마음에 남지 않아요. 아직 침대를 살 때가 아니니까요. 대신 놀러 와서 즐거웠던 공간의 이름이 시몬스라면, 정작 침대를 살 때가 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잖아요. 10년 뒤의 고객에게 지금 미리 이름을 심어두는 기획이었던 거예요.


정육 포장 트레이에 담겨 판매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의 삼겹살 수세미 굿즈


그래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침대와 아무 상관 없어도 괜찮았어요. 오히려 침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지금 살 사람만 반응하니까요. 1층에는 농구공과 소주잔, 롤러스케이트 같은 굿즈가 놓였고 그중 '삼겹살 수세미'는 완판되며 시그니처가 됐어요.


생각해보면 수세미도, 소주잔도 원래는 사고 나면 그만인 생활용품이잖아요. 근데 거기에 콘셉트를 한 겹 입히니 이야깃거리가 생긴 거예요. 삼겹살 모양 수세미를 본 사람은 웃고, 사진을 찍고, 결국 이렇게 묻게 되죠. "이거 어디서 샀어?" 그럼 답이 나와요. "이거? 시몬스건데?."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요. "시몬스가 이런 것도 만들어?" "시몬스면 침대 회사 아니야?” 침대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물건이 집에 남아있는 한 브랜드 이름은 대화 속에서 몇 번씩 불리게 만든거죠.

이렇게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는 2022년 2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년 7개월을 운영하며 누적 방문객 20만 명, 관련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4만 건을 기록했어요. 침대를 한 대도 팔지 않고 월 매출 1억 원을 낸 매장이었고요.

침대회사에서 침대를 뺀다는 결정에는 분명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테고, 당장의 매출로 이어지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금 사려는 사람'이 아니라 '10년 뒤에 살 사람'을 상대하겠다는 기준이 먼저 서 있었기 때문이죠.

콘셉트의 힘이 여기에 있어요. 목표를 정하는 건 결국 사람이지만, 그 목표를 끝까지 붙잡아주는 건 콘셉트거든요. 매출이 급할 때도, 반대 의견이 나올 때도 우리가 왜 이 길을 골랐는지를 다시 확인시켜 주니까요.




🏆 퍼시스 〈UNSEEN AWARDS〉 | 사무가구 회사가 ‘시상식’을?

BEFORE — "우리 의자와 책상이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보여줄까?"
AFTER — "이 가구를 매일 쓰는 사람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퍼시스는 이름은 다소 낯설어도, 제품은 이미 익숙한 회사예요. 40년 넘게 사무가구 1위를 지켜온 브랜드이자 의자 브랜드 시디즈, 재택·스타트업 가구 브랜드 데스커, 생활가구 브랜드 일룸을 함께 둔 퍼시스그룹의 모(母)브랜드거든요. 지금 앉아 계신 의자도 그중 하나일 수 있고요.


붉은 커튼과 대형 트로피 조형물로 시상식장처럼 꾸민 성수동 퍼시스 〈UNSEEN AWARDS〉 팝업 외관


그런 퍼시스가 지난 6월 14일부터 21일까지 성수동 LECT SEOUL에서 팝업을 열었어요. B2B가 본진인 회사가 일반 소비자를 만나러 나온 것도 낯설지만, 더 낯선 건 그 공간이 쇼룸이 아니라 시상식장이었다는 점이에요.


사무가구에는 오래된 특징이 하나 있어요. 쓰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다르다는 거예요. 구매는 회사가 결정하고, 하루 여덟 시간을 그 의자에 앉는 건 직원이죠. 그래서 이 업계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구매를 결정하는 쪽을 향해왔어요. 내구성, 단가, 관리 편의 같은 말들로요. ‘제품이 얼마나 좋은가’를 증명하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의 답은 언제나 제품이었어요.

그런데 퍼시스는 올해 초 리브랜딩을 하면서 'Design for the unseen(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한다)'을 새 브랜드 철학으로 내놨어요. 눈에 보이는 제품뿐 아니라 업무 흐름, 조직의 변화, 공간이 운영되는 과정까지 설계하겠다는 뜻이에요. 가구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다루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죠. 질문의 대상이 구매자에서 사용자로 옮겨간 순간이에요.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와요. 그 말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은 광고로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이 되니까요. 리브랜딩으로 방향이 정해지자, 퍼시스가 만나야 할 상대도 분명해졌어요.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가구를 매일 쓰는 사람들이요.

타깃이 정해졌다면 그다음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였어요. 이들에게 의자의 스펙을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고르는 건 회사니까요. 그래서 퍼시스는 반대로 접근했어요. '이 사람들이 평소에 듣고 싶지만 좀처럼 듣지 못하는 말이 무엇일까?'. 회의를 잡고, 자료를 정리하고, 새로 온 동료를 챙기는 일. 티는 안 나지만 그 일들이 조직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일이 중요했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죠.


퍼시스 〈UNSEEN AWARDS〉 팝업 내부, 박수 치는 손 모양 트로피가 줄지어 놓인 레드카펫 통로와 방문객에게 건네는 메시지 벽면


그 말을 전하는 형식은 이미 세상에 있었어요. 바로 '상'이에요. 상은 '당신이 한 일에 의미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주는, 가장 익숙하고 확실한 장치니까요. 다만 지금까지 시상식은 늘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에게 돌아갔어요. 퍼시스는 형식은 그대로 두고 받는 사람만 바꿨어요. 그렇게 원래는 잘 어울리지 않는 'Unseen(보이지 않는)'과 'Awards(시상식)'라는 두 단어가 하나의 콘셉트가 탄생한 거예요.


공간도 시상식장 그대로예요. 레드카펫과 포토월을 지나 들어오면 여기서는 누구나 오늘의 주인공이 돼요. 무대에서 이름이 불리고, 동료에게 건넨 응원의 말에 실제 박수 소리로 화답하는 트로피가 놓여 있고,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이어져요. 제품을 따로 진열한 코너는 없어요. 방문객이 앉고 머무는 자리가 전부 퍼시스의 가구니까요.

인상적인 건 마지막이에요. 방문객은 자기 퇴장하며 주변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을 직접 지명해 상장을 만들게 돼요. 동료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요. 의자에 앉아보고 나오는 대신 누군가의 이름을 적고 나오는 거예요. 팝업을 나설 때 손에 남는 게 브로슈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줄 상장이라는 점이, 이 공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줘요.

결국 퍼시스는 가구를 한 점도 설명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전했어요. 'Design for the unseen'이라는 문장을 벽에 써 붙이는 대신, 보이지 않던 사람을 직접 무대에 올렸으니까요.
그리고 이 콘셉트에는 한 가지 마음이 더 담겨 있어요.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무공간이 돌아가고, 그 공간을 만드는 퍼시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여러분이 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와 같은 말을 광고 문구로 적으면 흘려 듣게 되지만, 직접 상을 받거나 만들다 보면 몸으로 기억하게 돼요. 퍼시스가 시상식이라는 콘셉트를 고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 아모레성수 〈뷰티서바이벌 살인사건〉 | 화장품 매장이 사건 현장이 된 이유

BEFORE — "고객이 우리 제품을 더 많이 테스트해보게 하려면?"

AFTER — "고객이 스스로 제품을 만지고 비교할 '이유'를 어떻게 만들까?"


조명 달린 화장 거울에 'WHO DID IT?'이 적힌 아모레성수 〈뷰티서바이벌 살인사건〉 포스터


지난 7월 28일, 아모레퍼시픽의 성수동 플래그십 스토어 '아모레성수'에 낯선 콘텐츠가 하나 올라왔어요. 이름은 〈뷰티서바이벌 살인사건〉. 화장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살인사건이라니, 조합부터 낯설죠.

뷰티 매장에는 오래된 고민이 있어요. '제품의 차이는 발라봐야 아는데, 정작 발라보게 만드는 게 어렵다는 것'. 그래서 업계는 늘 같은 방향으로 답을 찾아왔죠. 테스터를 더 많이 깔고, 조명을 더 밝게 하고, "한번 발라보세요" 하며 직원이 다가가 권하는 방식으로요. 문제는 그 권유가 종종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거예요. 결국 매장을 한 바퀴 훑어보기만 하고 나오는 일이 흔해지고요.

아모레퍼시픽이 이 공간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했어요. 자사 제품의 차이는 색과 질감, 제형에 있다는 것. 열 개의 립스틱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브러시에 따라 발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래서 필요한 건 ‘더 좋은 설명’이 아니라 고객이 스스로 발라볼 이유였어요.

그럼 여기서 질문이 바뀌어요. '어떻게 권할까(수동)'에서 '어떤 상황이면 알아서 하게 될까(능동)'로요.


아모레성수 〈뷰티서바이벌 살인사건〉 현장, 화장품이 놓인 메이크업 데스크와 폴리스라인으로 표시된 사건 현장 연출


사람이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이 있어요. 뭔가를 찾아야 할 때죠.

화장품은 단서로 쓰기에 꽤 좋은 재료예요. 색이 다르고, 질감이 다르고, 무엇보다 흔적이 남으니까요. 립스틱 자국, 파운데이션 톤, 브러시에 묻은 잔여물처럼요. 실제 수사에서 미세한 증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듯이요.


그렇게 '뷰티 사이언스'와 '추리'가 만났어요. 방문객은 특별 수사팀 수사관이 되어 뷰티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의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해요. 약 60분이 넘는 시간 동안 35개의 단서를 모으는데, 그 단서가 전부 화장품이에요. 립스틱 10종을 직접 발라보며 숨은 단서를 찾고, 메이크업 브러시를 비교하고, 피부 톤별로 파운데이션을 테스트해요. 권유가 사라진 자리에 필요가 들어온 거죠. 고객은 ‘발라보라’ 해서 바르는 게 아니라, 범인을 찾기 위해 바르게 돼요. 그 과정에서 향과 텍스처, 제형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되고요.

초기 방문객들은 완성도가 높다는 평과 함께, 이야기에 빠져 있는 동안 제품까지 자연스럽게 써보게 됐다는 반응을 남겼어요. 그것도 한 시간 넘게 머물면서요. 10분에서 20분이면 끝나는 보통의 팝업과 비교하면, 고객이 브랜드 곁에 머문 시간이 몇 배로 길어졌어요.

아모레퍼시픽은 이 공간을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라고 설명했어요. 그런데 매장의 제품 라인업은 그대로예요. 바뀐 건 방문객에게 주어진 역할과 공간의 구조뿐이었죠. '물건은 그대로인데 존재하는 이유가 바뀌면, 사람이 완전히 다르게 움직인다', 앞에서 본 양초 퀴즈와 같은 이야기죠.

그래서 콘셉트가 중요한 거예요. 예산을 더 쓰거나 공간을 더 크게 잡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제품이 고객의 하루에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정하는 일이니까요.




세 팝업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여요. 세 곳 모두 "우리 제품을 어떻게 보여줄까"에서 "이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로 생각했다는 거예요. 질문이 바뀌자 공간의 생김새가 달라졌고, 고객이 하는 행동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다녀온 뒤에 남는 것도 달라졌어요.

콘셉트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에요. 돈을 더 쓴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예산이 적다고 못 만드는 것도 아니거든요. 필요한 건 우리가 왜 이걸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이에요.

참고로 콘셉트(concept)의 어원은 '붙잡다'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해요. 흩어진 요소들을 하나로 꿰뚫어 붙잡는다는 뜻이죠. 좋은 콘셉트를 보면 이 말이 두 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획하는 사람에게는 흩어진 결정들을 붙잡아주고, 고객에게는 여러분의 공간에 방문해야 할 마음을 심어주니까요.

님의 다음 오프라인 프로젝트는 지금 어떤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나요? 그 질문이 결국 공간의 모습을 정하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콘셉트로 이어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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